페북 글 정리 : 2016-2017

1. 쉴 수 있다는 것



한 나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물론 친구들도 만났고
 어머니와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업무 내용은 최소한도로 다루고
 그냥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했다.
멀리 나가지는 않았지만 동네 산책하며 단풍을 보았다.
조금 살 것 같다.
여전히 시끄럽고, 희망은 안 보이는 것 같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지만
 조금 쉬고 나면 조금은 더 버틸 힘이 생긴다.

그 버틸 힘을 마련하는 건, 주변의 기다림과 '쉬어도 되는' 안전망이다.
그 안전망이 조금 더 많아지고, 넓어졌으면 좋겠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2. 쇼핑유감



한 달이 지나서야 글을 쓴다. 아, 나란 인간 이런 인간.

때는 이멜다 놀이를 시작하던 9월 둘째주였다. 원피스를 무더기로 아나바다한 친구 H모 양 덕에(이분 캐리어에 꽉 채워 옷을 들고 오심...) 원피스에 맞출 구두를 사러 모 백화점에 갔다.

 그냥 얌전히 구두만 들고 오면 좋았으련만, 괜히 화장품 매장에 갔다가 나는 봉변을 당한다.

진한 색 말고 데일리 립스틱도 필요하단 자체 설득에 넘어가 매장에 들어간 것.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지름의 어머니인 듯.

여기에서 나의 대 굴욕은 시작된다.

근사한 매장 아티스트(남, 20대 후반)이 립스틱 바르기 전에 화장을 지워주고 뭘 좀 하면서 조목조목 티미한 호갱을 돌려차기 시작한 것이었다. 요는 고갱님의 피부는 각질이 많고 주름이 생기고 있으며(야, 주름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한 나이야...) 따라서 부단한 제품 바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분, 대놓고 이런 말씀까지.

"고갱님, 관리를 전혀 안 하시나봐요."

이누마... 내가 관리를 안 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안 했다는 말을 대놓고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30초 간격으로 들이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나름 시간을 들여서 영업을 하고 있으니 참았다. 주로 소비자의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 이런 걸 하지 않는 당신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둥, 자격미달이라는 둥(그러고 보니 이건 유아교육시장에 많은 듯). 이런 죄책감/수치심 등의 자극이 주로 어느 연령대에, 어느 성별에 효과적일까. 특히 '잘 생긴' 젊은 남자 직원의 이 무례와 프로페셔널함을 오가는 전략이 어디에 먹힐까도.

생각할 이야깃감이 꽤 있을 듯.

그럼에도, 결론은 꽤 허무한데...

그놈아가 칠해 준 피부 화장이.... 8시간이 지나도 멀쩡했고, 생전 안 발라보던 색상인데 의외로 어울려서 미묘해졌다. 안 어울려야 분노하며 팔만대장경을 쓸 수 있거늘(그랬으면 기분이 두 배로 나빴겠지).

그래, 실력은 있었구나...

결과적으로 오늘도 그 립스틱을 찹찹 바르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거 접근해 볼 수 있는 자료를 찾으면 추가로 업데이트를 할 듯.




3. 왜 이런 것까지


새집으로 이사온 지 열흘. 그동안의 시시껄렁한 일상들. 웃기고 사소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기록해 둔다.

01. 집 청소

이전에 살던 집은 깨끗한 집이었고, 또 깨끗하게 살았는데 이사온 집은 조금 오래 돼서 그런가 안 깨끗하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청소 대장정에 나서셨는데...

 나중에 저러다가 큰일날까 싶을 정도로 몰두하셔서(베이킹 소다와 식초가 영혼의 단짝이 되었음) 모양에게 문의한 결과

체력이 넘치고 의지가 넘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말리면 홧병난다고.

홧병보단 몸살이 낫다는 명언을 남겼다.

어머니는 격하게 동의.

02. 왜 이런 게 유전.

이 와중에 동생 생일이어서 케익 담당인 나는 총총 나가 티라미수를 사 왔다. 순 내 취향.

그리고 티라미수라는 고유명사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집 남성동지 1호는...

"파트라슈?"

네로랑 아로아 불러서 티라미수 먹어야 할 기세.

그리고 남성동지 2호는 티라미수에 올라간 마카롱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누나, 스폰지 먹을래?"

스폰지 먹으면 나 죽어... 마시멜로랑 헷갈렸다고. 야 이노마....

이 이야기를 들은 모 양(역시 동일인물)은 부자 인증이라며 참 좋겠다는 명언을 남겼다.

03. 바이킹

일 주일에 한 번 아파트 장이 서는데 소규모 놀이기구 바이킹이 온다. 어린이는 3000원, 어른은 4000원.

몹시 타고 싶은데 아무도 안 오고
 혼자 저걸 탔다가 한 5분간 시선을 모을 생각을 하니 몹시 난감하다.

다행이 토요일마다 와서, 마음을 억누를 수 있다.
 

04. 의연해지는 연습

요새 화낼 일은 많은데 일이 제곱비례해서 그런가, 좀 덤덤해진다. 화낼 기력을 모아 일을 하고 상대방 때문에 감정 상하지 않는(실은 그럴 힘이 없음) 훈련이 되고 있다. 감사해 해야 하는 것인가.

05. 구두

8년 가까이 신은 구두 두 켤레가 많이 낡았다. 원래 버릴 생각 하고 새 구두를 두 켤레 샀는데, 이모가 바지 밑에 막 신으라고 구두 한 켤레를 주시고 버리려던 구두도 수선하니 신을 만해서 버리지 않았다. 결국 구두 세 켤레가 늘어남. 신발장 안에 내 신발 지분이 제일 높다.

요즘 내 별명은 00동 이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같이 있는 사람들, 좋은 동료들에게는 참 감사한다. 귀한 사람들에게 귀하게 대해야겠다.





4. 우문현답



언젠가 일하다가 화가 너무 나서, "저 화가 너무 나요."라고 한 적이 있다. 같이 일하던 선생님은 불교 신자셨는데, "절에 다니면 반야심경이라도 사라 할 텐데.."라는 대답을 하셨다. 갑자기 너무 웃겨서, "선생님, 그럼 기독교인은 뭘 읽을까요?"라고 물었더니(불교 신자에게 묻는 이 정신상태에서, 이미 내가 얼마나 미쳤는지 알 수 있다) 한참 고민하시던 이 선생님.

"....욥기서?"

종교는 재앙을 설명하는 마지막 보루라더니.
웃다가 화가 다 풀렸다.

그 선생님께 사도바울 서신들도 괜찮다는 정보를 드렸다.

갑자기 오래 전 일을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시 일하다가 화가 나서.



5. 미스터리



미스터리

1. 일을 하나 해 보냈는데 두 개가 돼서 왔다.

2. 두 개를 해서 보냈는데, 아까 해 보낸 하나가 문제가 생겼다고 다시 부탁한다.

 3. 세 개를 마무리해서 보냈더니 다른 일이 또 생겼다.

4. 울고 있는데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에 펑크가 났다.

5. 오전 내내 1-4를 했는데, 새로 또 뭔갈 해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6. 돈과 자유를 맞바꾼 대가라고 생각하지만, 대가가 한없이 미미하여 슬프다.



6. 오늘의 정리

1. 즐겁거나, 의미가 있거나, 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얻는 것이 있는 모임은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오래 간다. 아침 모임은 좋았다.

2.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환상이다. - 오늘 읽은 책(레니타 살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3. 1의 긍정적인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때로는 나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것이 상대에게는 시간낭비일 수 있다.

5. 따라서 부단한 반성이 필요하다.

6. 어떤 사람이 유난히 내 속을 긁는다면

신앙인의 입장에서 그는 나의 성화되지(^^) 않은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이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는 나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사람이고,
내 마음대로 말한다면 그는 진상이다.

7. 새삼 6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대단해 보인다.

8. 그게 싫어서 공부했지만, 어쨌든 사람은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만은 없다.

9. 적절한 거리두기와 적절한 친교가 필요하다.

10. 적절한 의사표현도 몹시 필요하다.

11. 아직도 갈 길이 멀다.




7. 학기말 감상

1. 예시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들고, '안 되는 것들'을 차분히 알려 준다.

2. 추상화된 표현을 잘 못 알아 들을 때는 실례를 들어 준다.

 3. 다정하지만 엄격할 때는 엄격하게.

4. 건강을 잘 챙긴다.

5. 화가 날 땐 화가 난다고 말한다.

6. 그럼에도, 가르칠 때는 후회없이 사랑할 것.




8. 봄날의 기억


한 달 반 전 일이다. 욕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다가 하얗고 긴 머리카락을 몇 가닥 발견하고 침통한 얼굴로 열심히 뽑았다. 심지어 한두 가닥도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곱게 모아서 가지고 나오며, 어머니께 '엄마, 나 흰머리 뽑았어.'라고 불효막심한(...) 소리를 하자 어머니는 곧 있으면 마흔인데 흰머리가 날 만도 하다는 쿨한 답변을 하셨다. 아아, 어머니...

그리고선 '그런데 벌써 네가 서른 여섯이니. 그냥 마냥 여섯 살이었으면 좋겠다. 같이 놀게.'라는 말을 던지셔서 울컥한 딸이 공항버스 타고 가는 내내 훌쩍훌쩍 울게 만드셨다.

 그 이후 사람에게는 나이 듦과 어린 것이 같이 있어서, 그가 겉은 늙어도 늙은 사람으로서 자신을 규정하지 않을 수 있고, 어려도 늙은 것처럼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을 어떻게 끄집어내서 지금 내 삶으로 끌어당기고 살 것인가...

그리고 며칠 전 낮, 동네에서 어머니와 점심을 먹는데 햇살이 부시고 온기가 돌았다. 아침저녁으로 돌아다니느라 두터운 내 옷차림과는 달리 가벼운 옷차림으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는데,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또 봄이 오고야 말았구나.
서럽다, 시간이 가는구나.
나는 이 계절을 맞을 준비가 안 됐는데.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사람은 언젠가는 이별하기 마련이다. 철없다고 생각했으나 몸은 노화의 증거(!)를 내보내고, 영원히 곁에 있을 것 같던 사랑하는 이들은 언젠간 떠난다.

그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기억은 지난 과거를 다시 살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오늘의 햇살, 한 달 전의 어머니의 목소리.... 이런 것들을 잘 저장해 두어야겠다. 생각은 어지럽고, 마음은 복잡하다.






9. 어느 날의 메모


01. 생각을 잘 정리해 둘 채널이 필요하다. 이하생략.

02. 김현의 글을 잠깐 읽다가 메모한 부분.

 1986.1.30.
중산층의 의식 구조에 관한 에세이 :
1. 부흥회-기도회
2. 탈향-귀향
3. 아파트
4. 주간지-여성잡지-과시적(소비적) 아름다움
5. 텔레비젼-오디오-비디오
6. 점심 먹기-맛있는 곳 찾기-몰려들기
7. 인스턴트 식품-라면 문화
9. 싼 맥주 마시기
10. 차 마시기
11. 대중 가요
12. 결혼식
13. 골동품 사재기
14. 자동차 바꾸기 : 김현, <행복한 책읽기> 23-24쪽.

86년에 쓴 글이지만 31년이 지난 지금도 맞아떨어지는 이야기가 많다. 신앙의 습관화, 아파트라는 취향, 과시적이고 소비적인 아름다움, 맛있는 곳 찾아 몰려들기, 차 마시기, 대중가요(프로듀스101ㅋㅋ), 결혼문화, 자동차....

03. 상대방이 던진 공을 받지 않을 것

한 며칠 생각이 어지러웠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진이 빠지는 순간이 생긴다.

- 자신들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를 통해서 확인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을 잊고 반복할 때.

사소한 일들이지만, 사소하지 않아서 피로해진다. 좀 덤덤해지고 무던해져야겠다. 오늘은 마침 집에서 작업할 수 있어서 어지러운 마음을 곱씹으며 기도하다가 청소를 하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

- 상대방이 던진 공을 받지 않으면 된다.

그가 작정하고 나를 맞추려고 던졌는지, 위협하려고 던졌는지, 혹은 잊어버리고 던졌는지... 복잡하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순간 나는 공을 들고 고민하는 사람이 된다. 그냥 어쩌다 날아온 공으로 생각하고 반응하지 말 것.

맞추려고 던진 공이어도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의연함이 필요하다.

아니면 정중하게, 감정적이지 않게 반응하는 힘?

황금률의 법칙을 따라,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행동할 것.

- 상대가 하지 말아 달라고 한 일을 하지 않고
- 상대가 하는 말, 행동을 미리 앞질러 판단하거나 해석하지 않으며(반성하라 안상원)
- 상대를 그대로 볼 것.
- 내 생각은 생각으로 건조하게 정리할 것.
- 감정이 실릴 때는 그 감정만 간단하게 말할 것. 지금의 감정을 더 키우지 않는다.
- 상대를 격려하고 긍정할 것.

조금 더 유연하고 평온해질 수 있기를.
사소한 일에 너무 시달리고, 너무 감정소모해서 고단하다.

내 일에 집중하면 확률상 덜 날카로워지는 듯.
재미있게 집중할 일을 만든다.

갈 길이 멀다



10. 오늘의 사건사고.

아침에 일어나 기분 좋게 점심약속을 기대하며 룰루랄라 책가방을 챙기고 휴대폰 홈버튼을 눌렀다.

어머나 배터리가 나갔나보네.

 어머나... 전원이 안 켜지네.

...

어머나 밤사이 안녕하셨네.

아니 얘야, 우리가 이년 반 봐 온 정이 있는데 밤사이 한마디 말도 못하고 안녕이니(라고 하지만, 사실 백업도 못 했다).

그리하여 혼비백산한 얼굴로, 근처 문 연 휴대폰 대리점에 (쳐)들어가 휴대폰을 건졌다.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 그런대로 납득 가능한 제품을 받았고...

여기저기 울며 오전 내 휴대전화번호를 구걸했다. ㅠㅠ 내일 모레 이틀간 더 구걸할 듯. 혹시 장문의 카톡이 가도 긍휼히 여겨 주세요. ㅠ.ㅠ

직장인 친구들이, 클라우드나 안드로이드에 공유하는 게 좋다고...

그래. 문명의 이기를 이렇게 학습하는 게지(먼산).

다행히 인간관계 정리하지 말라며, 유머감각을 발휘해 연락처 알려 주신 분들께 감사를

그리고 오전 내 불안초조증상에 시달린 나는..

일단 진정하기 위해 과자 한 봉 뜯었다. 먼산.

페북 글 정리 : 2014-2015



1. 노트북 살류

#1.

근심없이 달게. 십 분 정도 자다 일어났는데 뜻밖에 머리와 마음이 맑다.

#2
 ...라고 썼는데 방금 생식겁.

물병 뚜껑을 제대로 안 닫아서 가방에 물이 흥건하다. 그리고 그 가방엔 들고 다니기 좋으라고 출혈을 감수하며 산 탭북이 있었다. 황급히 꺼내 보니 다행히 많이 젖진 않았다. 물기부터 닦아내고 말리는 중.

#3.
이 모든 과정은 15분 동안 지하철에서 일어난 것. 다행히 입은 다물고 잔 듯.

#4.
갑자기 당이 땡긴다.


2. 기적

하늘에서 불벼락이 내리고
 머릿속에 섬광처럼 인생의 진리가 떠오르고
 눈 뜨고 일어나니 벌레 대신 멀쩡한 인간이 되는 것보다
 매일 차곡차곡
 참아가며 할 일을 하고 사는 게
더한 기적.


3.
어메이징 사건사고

01. 중간시험날이었다. 시험지를 들고 총총 강의실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 싶어 5분간 기다리다가 지난 학기 강의실에 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02. 그 다음주 일이다.영상을 보여주기로 했는데 디비디를 안 들고 온 걸 20분 전에 알았다. 다행히 진언니 차로 순식간에 가서 디비디를 가져 왔는데... 강사실에서 자료 가져온다면서 자료만 들고 디비디는 강사실 책상에 두고 안 들고 왔다. 진땀 흘리며 쉬는 시간에 가져 와서 재미나게 감상 후, 수업이 끝났는데...

 디비디 컴퓨터에서 안 꺼내고 케이스랑 출석부만 들고 왔다. ㅜㅜ 결국 3시간 기다렸다가 강의실 빌 때 가져 옴.


03. 어머니가 된장국을 맛있게 끓여 주셔서ㅡ이건 진짜 어디 가서도 자랑할 만함. 엄청 맛있어서 우리 집 특식임^^ㅡ맛있게 먹고 다시 끓여놓는데, 마침 동생이 유일하게 시청하는 프로 '귀여워'(개와 고양이를 못 키우는 한을 이걸로 풀고 있는 듯)를 보기에 옆자리에 앉았다. 한참 둘이 깔깔거리다가 갑자기 냄새가...

된장국 다 타고
 냄비도 타고
 어머니 마음도 타고....

이번 학기에 냄비 태운게 두 번ㅜㅜ

04. 수업 중 모범적인 글이 있어서 샘플로 써도 되냐고 허락받고 문화상품권을 선물로 갖고 갔는데 없어졌다. 멘붕이 돼서 서 있으니 학생들이 괜찮다고 위로. 사과하고 보내놓고 한숨을 쉬며 usb를 주머니에 넣는데 ...

주머니에 얌전히 있었다ㅠㅠ
 다행히 담주에 줬다ㅜㅜ

05. usb잃어버려서 울다가 강사실에서 그다음주에 찾음.

이제 알림장 쓰기와 책가방 싸고 점검하기가 절실하다. 하루 10분은 꼭 투자하리.




4.

어제는 밤바람이 차서 창문을 조금만 열고
 조금 도톰한 이불을 덮고 잤다.
오늘 아침에는 청소기를 돌리는데 땀이 나지 않았다.
창문을 여니 하늘이 높고
 이 시간이 돼도 햇볕이 뜨겁지 않았다.

 그렇게 더워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가지 않을 것 같은 열기에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정말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말 없이 그 덥던 시절을 누군가는 견뎠을 것이다.
물론 나는 아니지만.

아니라고 해서 슬퍼할 일도, 자책할 일도 아니다.
 (본성이 그러한 것을)

그냥 누군가는 견디고
 누군가는 버티고
 누군가는 이겼을 시간을
 잘 지내온 것으로 축하할 일이다.

우리 모두
 여름을 잘 보냈어요.
다시 잘 자고 잘 쉬고
 가을을 맞아 보아요.



5.
도서관 잡담

1. 여름이지만 시원해서, 집중이 잘 된다. 집에서 작업하려고 할 때는 더워서 한 두시간 동안 끌탕을 하던 게, 도서관에서 작업하니 한 삼십 분만에 끝났다. 아아.... 꼼짝없이 방학 때도 나와야 할 듯.

2. 노트북실에 앉아 있으면 같이 인상쓰고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 혼자만 찌질(...)한게 아니라는 위안이 된다. 은근 여기 터줏대감들은 서로 눈이 마주치면 미묘한 공감을 주고받는다.

 3.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자료실 구석 소파에 늘어져서 읽을 수 있다.

4. 맘에 드는 간식을 리스트 적어 놨다가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장점 외에도 걱정스런 점은...

여름에 땀 뻘뻘 흘리다가 들어오면 시원해서
 잠이 잘 온다...
 (7-8월은 특히 더워서 잘 때 고생하는데
 도서관만 오면 그렇게 꿀잠을... 철푸덕...)



6.
학교 들어가는 길
 지하철 정문에 주먹밥이 있길래 샀다.
고소한 냄새에 허기를 못 참고
 도서관 올라가는 길에 있는 나무그늘서 식사 중
 바람은 시원하고 밥은 맛있었다.
간만에 천천히 맛도 즐겨 가며 먹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맛을 느끼고 천천히 배를 채우며 즐겁게 먹는 감각이 참 오랜만이었다.
논문도 공부도
 수업도 과제 채점도 시험 채점도
 내가 아는 대로 하려고 긴장하고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밥 먹는 걸로 치면 속식과 폭식이다.
지친 소화불량의 밤마다 몸은 붓고 마음은 허하고
 그러나 소통은 되지 않고.
음식이 맛을 전하듯
 텍스트가 하는 말을 듣는 여유가 필요하다.
오늘은 더 마음을 낮추고 귀와 눈을 열고
 내 모든 당신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7.


냉면이 먹고파 어머니와 냉면을 먹었다.
그릇을 다 비우고 저녁바람을 맞으며 슬슬 걸었다.
시장길을 걷다 속옷가게를 지나쳤다.
주인인듯 보이는 사십대 아주머니와
 아주머니를 도와 가게 밖 속옷매대를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마알간 얼굴의 청년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청년이 아니고 소년이다.
중학생은 됐을까, 인중에 슬쩍 거무스름한 빛이 도는 호리호리한 소년이다.
매대를 끌고 들어 가는 손길이 서툴다.
아주머니는 바깥 것부터 먼저 넣어야지, 애정어린 타박이다.
냉면사리에는 가위를 대지 않는 어머니는
 사리를 넘기며 꼭꼭 씹어 넘겼다.
오랫동안 손으로 더듬어야 풀리는 씨실과 날실과 글줄기처럼
 꼭꼭 씹어 삼키고 소화하려 걷는 저녁.

널린 속옷들과
 덜 자란, 모자 쓴 소년과
 어머니의 늦은 냉면이
 이상하게 매캐한 저녁이었다.


8.


간만에 머리 자른다고 미용실을 갔다. 온몸이 건조한데 두피도 예외가 아니라 피부과 가서 약 처방받아 올 정도로 심각하게 두피각질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미용실 가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머리 감겨 주는 스탭분에게 밤에 잘 감고 말리긴 했지만 흉한 꼴 보실 수 있다고(...) 미리 자진신고를 했다.

스탭분은 참 따뜻한 어조로 "괜찮아요."라고 한 다음 천천히 머리를 감겨 주셨다. 매뉴얼화된 친절함이 아니라 성품이 배어나오는 태도여서 더 고마웠다. 샴푸를 묻힌 손이 거품을 내고, 머리 사이사이를 누볐다.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번이고 이쪽저쪽 꼼꼼하게 손이 오고갔다. 샴푸 시간이 다른 곳에서 샴푸한 시간보다 훨씬 길고 정성스러웠다. 물로 헹구는 시간도 짧지 않았고.

초조함이나 성마름 없이 정성껏 머리를 감겨 주시는 덕에, 나도 편안하게 긴장을 풀고 한 십여 분 동안 머리를 맡겼다.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에 방문한 덕일 수도 있지만(나중에 다른 스탭분에게 슬쩍 물어 보자 샴푸 잘 해 주시는 분이라는 고급 정보를 들었다), 오늘 오후가 그 분 덕에 참 고맙고 행복했다.

자기 일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을 알면서도, 갈수록 나는 영혼 없이 사람을 대하면서 언젠가는 외롭지 않고,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지금 안 하는데 나중에라고 과연 하겠나.

지금 해야 하는 일들에 좀 더 마음을 열고 대할 수 있기를.

페북 글 정리 : 2013년의 기록

2013년의 기록

1. 제멋대로


제멋대로 말 엮어 생각하기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case1
옛날에 모모가 재미있다고 들려준 그룹의 노래. 그룹 이름이 생각 날락말락.
한참 생각하다가 나온 이름은

"파프리카 내 사랑"

정답은 "브로콜리 너마저"


case2
속담 중에 어딜 잘 드나드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 있는데 쥐, 방구리는 기억이 났다.
한참 생각하다 나온 문장은 "쥐방구리 풀방 드나들듯"

정답은 "풀방구리 쥐 드나들듯"
 (방구리는 무엇을 담아 두는 작은 그릇을 말함)

대체 나 와 이런 걸까.



2. 견디기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다리가 퉁퉁 붓는다.

해 놓은 분량을 보면 얼마 되지 않고.

별이 보여준 대로 갈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으니
그냥 꾸역꾸역 앉아서 붓는 다리와
 주체 못 하는 식욕과
 어찌할 수 없는 사건사고들을
 어깨로
 다리로
 견디는 중인데
 다들 이 과정을 건넜으려니 하면
 또 한켠으로는 용기도 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그렇게 살자.

이 몸으로 살아야 하니
(변신할 리도 없고!)
잘 다독여 가며

사이좋게
 그렇게 살자.



3.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하지만, 우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중하지 못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신중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과제들을 왜곡하는 순간 발생한다. 새로운 저항선을 형성하기보다는 믿을 만한 신뢰와 권위의 에테르에 의지해 버텨 나가려는 충동은 늘 근원주의를 두려워한다. 소위 '진중한' 정신은 해체적이고 발본적인 생각을 근원주의나 어설픈 이론으로 몰아세우는데, 중요한 것은 과거에 동원된 사람은 현재에도 동원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황호덕, <근대 네이션과 그 표상들>, 20쪽.



4. 정신차리자 1


어제는
 차 타다가 차 문에 머리 박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서 다리 찧고
 화장실 가다가 탁자에 팔 찧었다.

 오늘은
 미리 책가방도 챙겼겠다 씩씩하게
 화랑대역까지 걸어갔는데
 도착하고 나서야 지갑 안 가져온 걸 알았다.

모든 의지가 사라져서 그냥 집에 돌아왔다.

일단
 가출한 정신부터 잘 챙겨야겠다.



5. 정신차리자 2


한약 먹을 때 밀가루는 안 된다고 하지요.

그런데 어떤 바보가
 떡볶이는 떡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먹었어요.

 네.

사실
 그 바보는
 저예요.

똘똘하진 않았지만 어처구니가 없진 않았는데

이젠
 스스로를 믿어선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6. 간만에 저녁바람이 시원해서 산책
 귀뚜라미가 운다.
깨지 않고 곤하게 잘 잤다.
죽자고 시간이 안 가는 것같아도
 또 착실히 가는 것이 시간.
소중하게 보내자.



7. 한 사상은 다른 한 사상의 근거가 되어 준다. 사상이란 벽돌담 위로 쌓아 올린 벽돌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어떤 사람이 성찰을 하는 중에 아직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어떤 벽돌을 발견하고도 그 벽돌이 그에게 제기하는 가치를 보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의 사유는 사유가 아니다. 그는 성마른 허영 때문에 그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벽돌과 함께 황무지 또는 쓰레기 더미에 묻히게 될 것이다.
벽돌을 쌓아 올리는 벽돌공의 작업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한 권의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금방 쌓은 벽돌이 전에 쌓은 벽돌과 구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책도 마찬가지다. 독자에 지금 보이는 책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이전 것에 얹혀지는 총체이다. 책은 단순한 파편들 더미가 아니라 건축물로서의 자아 의식이다. - 조르주 바따이유,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서문.


8. 아침에 창문을 열었는데
 배추흰나비가 5층 높이까지 팔랑대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새들이 가볍게 휙휙 날아가는 것과 달리
'파다거린다'는 날갯짓이 무엇인지 와 닿게 힘겹게 날아가고 있었다.
초록빛 사이의 힘겨운 흰 날갯짓에 눈물이 핑.
감사한 아침.



9. 책을 잘 읽는 유일한 방법은 없지만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있다. 정보는 무한히 널려 있다. 그런데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운이 좋다면 선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혼자이며 남의 도움 없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잘 읽는 것은 고독이 제공하는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치유의 효과가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나 친구, 또는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속에 있는 타자성을 일깨워 준다. 상상에 의한 허구의 문학인 순문학(imaginative literature)은 타자성이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고독을 경감시켜 준다. 우리가 읽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정이 너무나 취약하고, 위축되거나 사라지기 쉬우며, 공간과 시간과 불완전한 연민, 그리고 가정과 애정 생활의 온갖 슬픔으로 짓눌리기 쉽기 때문이다. - 헤럴드 블룸,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 서문.




10.
도서관에서 제이랑 책을 읽고 있는데
 요즘 추천받은 Crazy like us라는 책에 꽂힌 상태(시작해서 두 쪽 읽었다 ㅎㅎ)
이 와중에 제이는 Creatures like us라는 문장에 꽂혀서 논문을 시작했다며 한탄.
우리 둘의 정신상태가 드러나는 대목이다.-_-

 모모는 우아하게 On Creaturely life도 있다고 했다.

우리 셋이 친구인 이유가 있었다.




페북 글 정리 : 2012년의 기록

1. 앞집 아동

간만에 앞집 아동이 놀러왔다. 여름내 너무 더워서 서로 놀러가고 오기가 힘들다고 생각해서인지, 쉬다가 어제 저녁에 휴롬으로 포도 갈 겸 저녁 먹으러 오라고 어머니께서 부르신 덕.
여름을 지나고 아동은 훌쩍 컸다. 표정도 영글고, 말도 많이 늘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애교도 피운다. 며칠 전 일 분도 못 있고 낯설어하면서 간 것과는 반대다. 사람과의 관계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온기로 기름칠을 하는 것이 필요한가 보다. 무럭무럭 잘 자라길, 아가. -09182012


2. 오늘의 하이쿠 시리즈

- 만드는 반찬마다 / 식욕조절용
- 자매가 아니길 다행이라 하니 / 형제였어도 좋았겠다고.
- 통화하던 건 줄 모르고 / 같이 대화한 나
- 운동하고 돌아오니 치킨냄새 / 아우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자판과 손가락의 협동으로/ 님을 놈이라 썼네


3. 가을연못

갔다가 물가를 물끄러미 들여나 봤는데, 물고기 한 마리가!
날이 쌀쌀하고 물도 곧 마를 텐데 저 물고기는 어떻게 될까.
삶이 고단해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한다. -10012012


4. 효율성


요즘 효율성을 생각하는데,
정해진 시간에 많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일을 '잘'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허겁지겁 피드백하다 보니
자꾸 체하고 어깨 아프고 손목 나가서 골골골 한다.

조금 더 좋은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집중하자.
-10272012



5. 빗길 도서관 풍경.

01.
헉헉대며 도서관을 기어올라가는데 (산길에 있으면 도닦는 마음으로 올라갈 수 있다) 어디서 울음소리가 났다. 울먹울먹하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학생이 있었는데, 말투를 들어 보니 중국 유학생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약간 에둘러서 발걸음 소리를 낮추며 지나가고 있었다.

 02.
도서관 출입구에 버려진 우산넣는 비닐을, 들어가려던 학생 한 명이 꼼꼼이 주워다 버렸다. 가방을 메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자 새쭉 웃고 들어갔다.

가끔 티나지 않게 품고 있던 보드라운 마음, 다정한 행동을 접하게 되면, 함께 용기가 난다. 그런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할 텐데. 11022012


6. 추억이란 물 속에서 건져낸 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물 속에서 갖가지 빛깔로 아름답던 것들도 물에서 건져내면 평범한 무늬와 결을 내보이며 索莫하게 말라가는 하나의 돌일 분. 우리가 종내 무덤 속의 흰 뼈로 남듯. 돌에게 찬란한 무늬를 입히는 것은 물과 시간의 흐름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종종 이즈음에도 옛날우물과 금빛잉어의 꿈을 꾼다. -오정희, <옛우물>. 11082012


7. 돼 봐야 안다.

case1
종종 지도교수님 일 도와드리러 연구실에 가면
"네가 와야 할 일이 생각이 난다"며 한 십여 분
버퍼링을 겪으셨던 지도교수님을 보고
 혹시 내가 미워서 그러시나 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전날 할 일을 메모해 놔도
 메모해 놨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놀다가 기겁하는 일이 일주일째.

case2
길에서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으나
 요즘엔 틈만 나면
 열쇠는 챙겼나
 버스카드 챙겼나
 지갑이랑 휴대폰 놔둔 거 아니지?
혹은 제출할 종이들 잃어버린 거 아닌가 하며
 십 분 간격으로 뒤져본다.
어제도 길바닥에서 두어 번. 친구여 미안해.

case3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님이 아흔 되시면서
 코트는 무거워서 못 입겠다고
 가볍되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환한 색 패딩을 요구하셨다.
그땐 무슨 코트가 무겁나 했는데
 요즘엔 어깨 아프고 무거우니 별 일 없으면 무조건 패딩이다.
 (삼십대에 이런다고 노화속도가 3배라는 말도 들었다)

모두 그 경우가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



8. 정신없다.

case1
화장대 정리하다 화장품 잃어버렸다.
찾다가 포기하고 방바닥에 엎어졌는데
서랍장 바닥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레오는 자기는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다며 바깥에다 내다버리지만 않았으면 된다고 위로.
 (이미 쓰레기통도 뒤져 보았건만)
하지만 내년이 되면 더 심해질 것이라는 무서운 예언을 남겼다.

case2
레오와 약속장소로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떤 친구의 아버님이 평생 여행을 그렇게 다니셨다고 말했다.
이때 이 증상이 무슨 살이 끼었다고 하는데 그 살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순간 떠오르는 것은 '도화살?'뿐.

정답은 역마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에게 참 큰 폐를 끼칠 뻔했다.
-12102012

페북 글 옮겨오기 : 2011년의 기록

1. 예의와 배려 사이. 예의가 바른 것으로 종종 우리는 타인에 대한 (무/의식적) 멸시를 드러낼 때가 너무도 많다. 내가 누군가에게 예의는 지키되 배려는 하지 않고, 따뜻함을 보여 주지 않아 상대에게 모욕감을 준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쓸쓸하고, 고마운, 더운, 습한, 여름. - 08062011

2. 1/2만 하면 되(-ㄴ다고 생각하는) 일이랑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랑 둘 중 무엇을 먼저 하게 될까. 합리적인 판단이라면 전자가 먼저겠지만 나는 늘 전자를 먼저 하면서도 전자를 후자보다 오랜 시간 들여 망하고, 후자를 짧은 시간 들여 망하게 만든다. 이건 당최...... -08282011

3.
후 회
 황인숙

깊고 깊어라.
행동 뒤의 나의 생각.
내 혀는 마음보다
 정직했으니.

4. 불암산 등반을 빙자한 산책코스 왕복4km, 홍대입구에서 종각역까지 6.27km 종각역에서 광화문역까지1.14km, 왕복 2.28km, 오늘 걸은 거리는 플러스 마이너스1.5km하고 총 12.55km. 고관절과 대퇴근이 뻐근하긴 한데 한동안 나를 괴롭히던 소화불량이 사라졌다. 작정하고 걷고 나니 잡념은 좀 사라지고, 단순해지니 좋다. - 10032011

5. 체력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쉽게 피곤해지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 체력 상태가 좋지 않은 듯하다. 이 몸으로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 하니 몸의 말을 잘 들어 주어야 할 듯. - 10092011

6. 오랜 시간을 들여도 일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고, 또 되려면 갑작스럽게 착착착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오늘 나는 누군가를 위한 톱니바퀴의 한 쪽이었는데, 정말 미약했지만 사소한 도움이나마 될 수 있어 기뻤다. 어떤 때건, 만나게 된 사람들을 귀한 인연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함과 용기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10112011

7. 뽕삘로 산다. 첨삭하다 지쳐서 넉아웃되면, 영화 한 편 보고 기운내서 다시 첨삭.
눈알꿰기 하다 지쳐서 넉아웃되면, 노래도 듣고 시인도 만나고 기운내서 다시 꿰기. - 11192011

8. 마음의 근육, 의지의 피부. 앞의 표현은 몹시 사랑하는 두 분 선생님이 글쓰기 공부를 가르치면서 꺼내신 말씀이고, 뒤의 표현은 책을 읽다가 떠오른 표현이다. 현실을 붙잡고 사는 마음, 생각하는 훈련, 다잡는 정신이 필요하다. - 11252011

9. 내과 가서 약을 처방받았는데 선생님이 '졸릴 수도 있어요'라고 하시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점심 먹고 약 먹고 전철 탔는데 전철 의자에 열선이 들어온 덕인가, 미친 듯이 헤드뱅잉. 옆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내가 눈 뜨고 두리번대니 '한양대에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뭔가 졸다가 내릴 역을 놓칠까 마음졸이신 듯. 신당에서 내릴 때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내렸다. 부디 나를 산업의 일꾼까지로는 안 봐주서 좋으니 밤새 논 한량으로는 짐작하지 않으셨음 하는 마음이...(그러나 후자가 가까운 거이...) - 1222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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